2026.09.28
패턴과 루틴
스즈키 이치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스즈키 이치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의 삶을 일종의 수평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모두 일본인, 어쩌면 그들의 문화 속 깊히 내제된 DNA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단순합니다. 그들이 만든 놀라운 업적과 사뭇 대조되는 그들의 간결한 루틴 때문입니다. 루틴이라는 단어로 다다를 수 있는 경이로움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실제화 한 인물들입니다. 스포츠와 소설, 동적인 직업과 정적인 직업, 얼핏 보면 교집합이 없는 단어들이지만 늘 그렇듯 이치는 하나의 길을 따릅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몇 가지 선명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스즈키 이치로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한 장면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과표. 아내가 냉장고를 열며 얼려놓은 카레를 보여주는 장면, 카레에 돈까스를 올리면 안된다는 이치로의 미소, 그리고 다시 카레를 먹는 그의 담백한 모습. 다큐멘터리의 한 순간이지만 정말 더하거나 뺄 것 없이 모든 찰나의 순간이 그의 의지대로 흘러갑니다.
하루키의 모습을 영상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집을 통해 상상속으로나마 그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초고쓰기에 6개월, 퇴고에 10개월, 그리고 이 모든 글쓰기 과정을 떠받치는 그의 놀라우면서도 간결한 일상의 스케쥴. 그 중심에는 운동과 재즈 그리고 독서가 있었죠.
열심히 살아야한다. 루틴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그런 건조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주제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루틴의 끝에는 실패가 있을수도 있고 비극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죠. 삶의 패턴을 만들고 그것을 루틴으로 세팅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시간’을 소유하기 위해서죠.
소유한다는 의미의 본질은 ‘주도권’을 갖는 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 의지와 지성 그리고 인식을 통해 무형의 시간에 촉감을 만드는 것. 스스로 직업을 정의내리고 그것을 통해 엄격한 패턴을 만들고 짜여진 구조 안에서 내 자신을 탐구할 기회를 갖는 것. 그리고 계속 루틴을 통해 자아의 대리석 덩어리를 다듬어나가는 것.
어떤 패턴을 만들것인가? 그 패턴을 통해 어떤 루틴을 구축할 것인가? 직업적으로 패턴과 루틴을 세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마주할 수 있는가?
저는 인간의 삶의 종착점엔 필연적으로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은 수동적인 의미입니다. 그것을 능동적인 언어인 ‘고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재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감각의 축적’ 그리도 다른 하나는 ‘패턴과 루틴’
이치로의 다큐멘터리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추천합니다.